구근본 자원봉사 시절에 녹취&캡쳐로 한땀한땀 만들었던,
KBS특별기획 - 한국전쟁 다큐멘터리 전체 녹취 내용.
10부작의 각 편을 상/하로 나누어 제작, 총 2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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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본 > 6.25전쟁 > KBS 특별기획 "한국전쟁" - 제1부. 분단(상)
홈 > 사건과 인물 > 6.25전쟁 6.25전쟁 글쓴이 : 관리자 . . . 매혹적이고 찬란한 것들은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인간은 늘 그런 매혹적이고 찬란한 것들을 열망해 왔다. 20세기 초, 그 열망은 자본주의 미국으로 상징됐다. 비슷한 시기, 평등과 계급 해방을 기치로 내건 러시아 혁명이 성공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탄생.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전쟁의 서막이었다. 1차 대전 패전으로 고통받던 독일 국민은 히틀러의 등장에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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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본 > 6.25전쟁 > KBS 특별기획 "한국전쟁" - 제1부. 분단(하)
. . . "제1부. 분단(상)"으로부터 이어집니다. 45년 10월, 조선해방 축하집회에 운집한 7만여 명의 평양 시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김일성.한국 내에 정치 기반이 약했던 김일성은 소련군정의 도움으로 세력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련군정도 당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조만식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인터뷰] "처음에 만나서 그 사람(조만식)이 이야기하기를 소련군과 협력할 용의가 없는가. 없다고 했습니다. 세 번 만났는데 세 번 다 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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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본 > 6.25전쟁 > KBS 특별기획 "한국전쟁" - 제2부. 전쟁의 시그널(상)
홈 > 사건과 인물 > 6.25전쟁 6.25전쟁 글쓴이 : 관리자 . . .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났다. 그러나 전쟁은 이미 그 이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48년 2월, 조선인민군이 창설됐다. 북한 정부가 공식 출발하기 7개월 전이었다. [자막/음성(김일성)] "조선 민족의 역사상 처음으로 인민 자신의 군대를 가지게 됩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학살과 탄압을 당하던 우리 조선 인민은 이제는 자신을 보위하는 당당한 인민군대의 자원을 가지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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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본 > 6.25전쟁 > KBS 특별기획 "한국전쟁" - 제2부. 전쟁의 시그널(하)
홈 > 사건과 인물 > 6.25전쟁 6.25전쟁 글쓴이 : 관리자 . . . "제2부. 전쟁의 시그널(상)"으로부터 이어집니다. 당시 충돌의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개성 송악산 전투였다. 송악산의 주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처음으로 연대급 병력이 투입됐다. [인터뷰] "송악산에서 내려다보면 488고지가 있어요. 거기에 인민군이 제가 볼 때 한 일개소대 돼가지고 우리 그 송악산을 쳐다보고 말이죠. 그 다음에 포사격을 하면 우리 개성시내까지 포탄을 뚫어 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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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본 > 6.25전쟁 > KBS 특별기획 "한국전쟁" - 제3부. 폭풍(상)
. . . 1950년 6월 23일, 인민군은 38선 인근에 집결을 완료했다. [인터뷰]“이건 틀림없이 전쟁이다 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6개월 전부터입니다. 6개월 전부터 무슨 굵직한 해프닝이, 이벤트를 말한다면 만주에서 나온 6사단이 사단 전투 훈련을 했습니다." [인터뷰]“6월 초순경에 함흥에서 원산, 철원, 금화 이렇게 열차편으로 이동했습니다. 금화에 하차해보니까 그 당시 금화역에는 포탄이 이건 거짓소리가 아니라 산더미같이 쌓여있는데 저희들도 놀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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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본 > 6.25전쟁 > KBS 특별기획 "한국전쟁" - 제3부. 폭풍(하)
. . . "제3부. 폭풍(상)"으로부터 이어집니다. 7월 1일, 맥아더는 일본에 있는 미 24사단을 한국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 선발대로 스미스 중령이 지휘하는 일명 스미스 부대를 먼저 파병했다.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군의 명성과는 달리 당시 일본에 주둔하던 미군은 대폭적인 군비 삭감과 주둔군 임무 수행으로 훈련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였다. 부산에 도착한 스미스 부대 540명은 대전을 거쳐 오산으로 향했다. 그들은 인민군이 미군을 보기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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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본 > 6.25전쟁 > KBS 특별기획 "한국전쟁" - 제4부. 북진(상)
. . . 50년 8월, 낙동강 전선에서 인민군의 공세는 더욱 치열해졌다. 이 전선만 돌파하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인민군의 최후 공세를 막아야만 했던 유엔군에게는 이 무렵이 가장 괴롭고 힘든 시기였다. 8군 사령관 워커는 시간을 벌기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맥아더는 그에게 9월 중순까지만 낙동강에서 버텨줄 것을 요구했다. 워커는 그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내고 있었다. 워커가 낙동강에서 시간을 벌고 있는 동안 맥아더는 전쟁을 반전시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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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본 > 6.25전쟁 > KBS 특별기획 "한국전쟁" - 제4부.북진(하)
. . . "제4부. 북진(상)"으로부터 이어집니다. 서울을 떠났던 시민들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울은 그들이 떠날 때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도처에서 볼수 있었던 것은 전쟁의 비참한 잔해들이었다. 폐허 속에서 시민들은 다시 삶의 터전을 일궈야만 했다. 90일동안 두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던 서울. 외형적으로 드러난 파괴보다 더욱 심각했던 것은 증오와 불신의 후유증이었다. 지하에 숨어 있던 사람들, 강제의용군, 어쩔수 없었던 부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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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본 > 6.25전쟁 > KBS 특별기획 "한국전쟁" - 제5부.후퇴(상)
. . . 1950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은 건국 1주년을 맞았다. 국군이 38선을 돌파했고 맥아더가 북한에 최후 통첩을 했던 이 날, 마오쩌둥은 미국이 38선을 넘는다면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날, 김일성과 박헌영은 마오쩌둥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긴급 전문을 띄웠다. 유엔군이 38선을 넘으면 인민군만으로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으니 중국군을 출동시켜 인민군을 지원해달라는 것이었다. 김일성이 중국에 구원 요청 서한을 보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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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본 > 6.25전쟁 > KBS 특별기획 "한국전쟁" - 제5부.후퇴(하)
. . . "제5부. 후퇴(상)"으로부터 이어집니다. 이무렵, 미군의 전면적인 붕괴소식에 당황한 트루먼은 한국전에 핵무기 사용을 고려중이라고 발표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다. [트루먼 기자회견]“우리는 미국의 안보와 생존을 위해 한국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엔을 통해 정의와 평화로운 세계 질서를 확립할 것을 공약했습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지킬 것입니다.” 트루먼의 핵무기 발언에 대해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들의 거센 반발이 일었다. 12월 4일,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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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본 > 6.25전쟁 > KBS 특별기획 "한국전쟁" - 제6부.또다른 전쟁(상)
. . . 전쟁이 시작된 지 1년. 전쟁의 승패는 쉽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군사력으로 승리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은 사라졌고 전진도 후퇴도 없는 교착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장기전을 예상하지 못한 군인들도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건국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한국전에 참전한 중국. 중국은 대만 점령 계획도 미룬 채 모든 전력을 한국전에 쏟았다. 그러나 춘계 공세 대참패로 재기불능의 인적 손실을 입자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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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본 > 6.25전쟁 > KBS 특별기획 "한국전쟁" - 제6부.또다른 전쟁(하)
. . . "제6부. 또다른 전쟁(상)"으로부터 이어집니다. 전쟁 후 두 번째 겨울이 찾아왔다. 회담이 시작된 지 4개월 보름 만인 51년 11월 27일, 마침내 양측은 현 전선에 기초한 군사 분계선 설정에 합의했다. 시한은 1개월이었다. 나머지 의제들이 30일 안에 해결되면 현 전선이 휴전선이 되지만 한달 안에 협상을 끝맺지 못하면 휴전선은 다시 그어져야 했다. 30일 간의 임시 휴전. 전선에서 들려오던 포성은 멎었고 군인들은 휴식에 들어갔다. 전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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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본 > 6.25전쟁 > KBS 특별기획 "한국전쟁" - 제7부.전쟁의 그늘(상)
. . .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풍요롭던 시절이었다. 소박한 행복이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낯선 바람이 불었다. 인민군의 서울 입성. 서울은 재빠르게 바뀌어 갔다. 태극기가 내려지고 새 깃발이 올라갔다. 서울의 새 주인 이름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곧이어 임시 인민위원회가 구성됐고 그들은 사람들을 좌와 우, 두 부류로 나누기 시작했다. 거리에선 인민 재판이 열렸다. 군중이 죽여라 외치면 반동분자로 낙인찍힌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피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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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본 > 6.25전쟁 > KBS 특별기획 "한국전쟁" - 제7부.전쟁의 그늘(하)
. . . "제7부. 전쟁의 그늘(상)"으로부터 이어집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선 움직여야 했다. 피난민의 대다수가 장사를 시작했다. 봇짐 속의 자기 물건을 하나씩 내다 팔던 것이 좌판이 되고 좌판이 모여 북적이는 시장을 이뤘다. 전쟁 전 남한 사람의 80%는 대부분 농민이었다. 그러나 이제 농사를 천직이라 여기던 농부는 풀빵 장수가 됐다. 미 군복을 검은 색으로 염색하거나 회색으로 탈색해서 팔기도 했다. 염색한 군복은 시장에서 인기가 좋았다. 싸고 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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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본 > 6.25전쟁 > KBS 특별기획 "한국전쟁" - 제8부.정전(상)
. . . 전쟁 후 세 번째 겨울. 휴전회담의 꺼진 불씨는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전투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전쟁의 화마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건 전선의 병사들이었다. 그들의 유일한 바람은 하루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인터뷰]“메라투치 일병입니다. 부모님께 안부 전합니다. 곧 돌아가겠어요."“조 윌리엄스 일병입니다. 부모님께 안부 전합니다. 제 걱정은 마세요. 곧 돌아가겠어요.”“와트슨 상병입니다. 부모님과 도로시에게 안부전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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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본 > 6.25전쟁 > KBS 특별기획 "한국전쟁" - 제8부.정전(하)
. . . "제8부. 정전(상)"으로부터 이어집니다. 휴전 조인을 눈 앞에 둔 7월, 공산군의 마지막 대공세가 펼쳐졌다. 공산군의 공세는 한국군이 방어하고 있는 중부 전선, 금성지구에 집중됐다. 남한의 유일한 전력공급원 화천발전소가 그곳에 있었다. 이 시기 포탄 소비량은 전쟁 기간 중 최대치를 기록했고 사상자도 15만 명에 달했다. [인터뷰]“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거기서. 우리나라 전투 중에서 다부동을 제외하고는 … 아마 화천발전소를 얻기 위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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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본 > 6.25전쟁 > KBS 특별기획 "한국전쟁" - 제9부.끝나지 않은 전쟁(상)
홈 > 사건과 인물 > 6.25전쟁 6.25전쟁 글쓴이 : 관리자 ...2차 대전 직후, 미소 양국에 의해 군사적 점령선으로 그어졌던 38선은 3년 여의 기나긴 전쟁을 거치면서 휴전선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휴전선은 38선과는 또 다른 무게를 가진 것이었다.전쟁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비극 속으로 내몰았다. 남북을 합쳐 2,500만 중 400만명 이상이 죽었고 대부분의 가정이 가족과 친척을 잃었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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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본 > 6.25전쟁 > KBS 특별기획 "한국전쟁" - 제9부.끝나지 않은 전쟁(하)
. . . "제9부. 끝나지 않은 전쟁(상)"으로부터 이어집니다. 1956년, 소련에서 제20차 공산당 전당 대회가 열렸다. 소련 공산당 제1서기였던 후르시초프는 스탈린을 비난하는 연설로 탈 스탈린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이전까지의 노선과는 달리 자본주의 진영과의 평화 공존론을 제기하는 것은 물론 스탈린에 대한 개인 숭배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공산권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의 태도 변화는 주변국가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북한 지도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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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본 > 6.25전쟁 > KBS 특별기획 "한국전쟁" - 제10부.에필로그(상)
. . . [인터뷰]“사방이 고아들이었습니다. 매우 슬프고 힘든 시기였습니다." [인터뷰 (계속)]"몇몇은 매우 어렸습니다. 하지만 순식간에 소총을 받아 사격을 하고는 전선으로 갔습니다." [인터뷰 (계속)]"이 사진은 추락한 미군 비행기입니다. 격추당한 게 아니라 추락한 겁니다. 한국 아이가 위에 올라서 있습니다.” 반 세기가 넘은 사진. 하지만 오래된 전쟁의 기억은 시간이 정지된 듯 선명하다. [인터뷰 (계속)]“가족이 피난 가는 겁니다. 매우 활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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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본 > 6.25전쟁 > KBS 특별기획 "한국전쟁" - 제10부.에필로그(하)
. . . "제10부.에필로그(상)"으로부터 이어집니다. 전쟁 기간 중 가장 많은 피난민들이 모여들었던 곳이 부산이다. 마땅한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피난민들은 산기슭에 판잣집을 짓고 타향살이를 시작한다. 몇 개의 판자를 이어붙여 만든, 그야말로 바람만 막아주는 수준이었지만 그나마도 그런 집조차 갖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인터뷰]“우리 고향에서 온 사람들끼리 (전부 홀아비들이라) 다섯씩 조합을 해가지고 거기다 소위 하꼬방이라고 판잣집 짓고 거기서 남자들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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